떨어짐을 두려워 말게나

2021. 7. 20. 20:54카테고리 없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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#불합격 #수필

자격증 시험 합격자 발표날이다.

한국산업인력공단 큐넷 사이트를 열고 있는 커서의 움직임에 심박수에도 긴장이 감돈다.

사실 합격의 확신은 안 섰다.


전력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엔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 양심에 있다.

그런데도 요행을 바라는 건지 몰라도 공부에 매달린 시간만큼은 보상받고 싶어 이 날을 기다려왔다.

드디어 합격 결과를 알리는 모니터 화면이 열렸다.

결과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.

불합격이 있었 것이다.

가슴이 잠깐 철렁거렸지만 본능적으로 다시 안정이 취해진다.

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.


이젠 나이도 들어 시험과 무관하게 살 줄 알았는데 가고자 하는 길엔 어김없이 시험이라는 관문이 도사리고 있었다.

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자격시험을 본다는 자체를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.

쉰 살 넘은 나이에 시험 보는 게 창피하기 때문이었을 거다.

그러던 어느 날 우리들만의 리그가 아닌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.

그곳에는 쉰 살 정도가 아니라 머리 허연 어르신들도 자격시험 치르러 여러 명이 시험장에 와 계셨던 것이다.

우연한 기회에 시험감독하러 가서 보게 된 다른 리그의 자격증 시험 장면은 나 역시 선수로 뛰고 싶은 욕구에 불을 지폈다.

진작에 못하고 나이 든 선수들 뛰는 모습 보고 반해서 따라 하는 비겁함에 자괴감이 왜 없었겠는가.

여하튼 그렇게 용기 내어 시작한 공부가 불합격 릴레이의 시발점이 될 줄이야-


실은 어려서부터 시험에 떨어져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시험 보는 족족 합격했었다.

차려준 일상에서 처절한 쓴맛을 느껴보지 못하고 입맛에 맞게 성장한 거다.

그 시기에 단맛, 짠맛, 신맛, 쓴맛 중에서 쓴맛만 못 봤던 것이다.

이것은 살아오면서 결코 자랑이 될 수 없었다.

탈락이라는 쓴맛은 성장기의 보약이었는데 그 보약을 못 먹고 자라다 보니 오만이라는 병에 자주 걸렸다.


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오만함을 고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단맛에 빠져 사는 바람에 치료시기를 놓치고 말았다.

결국은 겸손함의 면역력이 떨어져 세상살이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.

쓴맛이 보약이었음을 그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다.

세상 풍파 겪으며 숱한 세월 지나서야 알게 된 거다.


나는 알아주는 사람 없는 무명인이라 세상에는 떠들지 못하고 자식들에게만 속삭인다.

"떨어짐을 두려워 말게나

쓴맛을 보약 삼아 기력을 회복하면

훗날 그것이 최고의 명약이었음을 알게 될 테니..!"


합격자 발표날이면 브라우저에 싸늘하게 펼쳐지는 불합격 통보가 이골이 날 즈음,

한국산업인력공단 큐넷에서 애타게 보고 싶었던 글자가 기어코 화면에 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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